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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05-03 (금)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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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색맞추기 비례대표 아닌 정치인으로 인정받고 싶다”

“구색맞추기 비례대표 아닌 정치인으로 인정받고 싶다”


최동익 민주통합당 의원은 19대 국회의 유일한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이다. 2살 때부터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됐다. 10살이 되자 시력을 거의 잃어 시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그는 “모두 잘못된 치료가 원인이 된 의료사고였다”고 설명한다. 국립맹학교에 들어갔다. 맹학교를 졸업한 시각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안마사가 되거나 침술을 배우는 것뿐이었다. 공부를 하고 싶었다. 학원 종합반에 등록하고 국어·영어·수학 수업을 ‘귀로만’ 따라갔다. 숭실대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사회복지 석사과정을 마친 뒤 장애인 운동에 투신해 20여 년간 장애인 인권을 위해 활동했다.


악수 청하며 이름도 안 밝히는 의원들

지난 총선에서 장애인 몫으로 민주당 비례대표 2번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새누리당에선 한국지체장애인협회장 출신인 김정록 의원이 원내에 진출했다. 대선 과정에선 문재인 후보 캠프의 장애인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최 의원은 지난해 각각 민주당과 시민단체가 주는 국감 우수의원상을 받았다. 여성배우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해도 60살 이하의 남편은 연금을 받지 못하는 부조리를 개선하기 위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양로원과 보육원 등 사회복지단체에 대한 지방세 특례 일몰 기한을 삭제하는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을 대표 발의해 통과시켰다. 지난 2월15일에는 최 의원이 대표로 있는 국회장애인복지포럼이 우수 국회의원연구단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 의원 쪽은 이런 정책적 성과가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긴다. 최 의원은 “지역구 의원들이 비례대표 의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을 텐데 나는 비례대표에다 장애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 중에서도 성공한 사람이 많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던 김용준 전 후보자나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도 장애인이 아닌가. 이런 분들은 장애인계에서 활동한 분이 아니다. 자기 삶의 영역에서 성공했고, 주류의 질서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장애인 활동을 했다. 주류 세계에서 성공한 경우가 아니라면 장애인은 대체로 낮은 사회적 지위에 저학력·저소득자라고 생각한다. 아마 외부에서는 무시할 수 있는, 무시해도 되는 존재로 보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차별도 있다.”

최 의원이 느끼는 ‘보이지 않는 차별’은 어떤 것일까. 지난 4월9일 오전 국회에선 민주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안녕하세요, ○○○의원입니다.” 악수를 청하는 손길이 최 의원에게 밀려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인사하는 의원들은 대부분 이번 5·4 전당대회 출마자들이었다. 상대방이 아주 가까이에 있어도 희끄무레한 윤곽만 파악할 수 있는 최 의원이다. 그는 국회가 열린 직후 초선의원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사람을 알아보기 어려우니 인사를 할 때 이름을 말씀해주시고, 혹시 제가 인사를 받지 못하더라도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니 양해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의원실 관계자는 “평소 열리는 의총에선 최동익 의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일이 많았다. 오늘 분위기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이날도 표를 호소하지 않아도 되는 많은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그대로 그의 곁을 지나쳐가기 일쑤였다. 의원회관 복도에서 마주친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정면에서 다가오는 최 의원을 피해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회의장 유리벽을 문으로 착각하기도

최 의원은 “지금은 구분이 되는데 처음 국회에 왔을 때는 유인태 의원과 우원식 의원, 또 원혜영 의원과 강기정 의원의 목소리가 비슷해서 헷갈릴 때가 많았다”며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서 먼저 다가오는 분은 박지원 전 원내대표”라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은 1990년대 초반부터 왼쪽 눈의 안압이 높아지는 증세로 치료를 받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시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가 눈의 핏줄이 터져 한쪽 눈을 잃은 뒤 의안을 넣었다. 2004년 대북 송금 파문으로 구속 수감된 뒤에는 남은 한쪽 눈에 녹내장 증세가 나타나 시력을 완전히 잃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심전심이랄까, 이날도 박 의원은 “최 의원, 안녕하세요. 박지원입니다”라며 먼저 악수를 건넸다.


단순히 인사를 주고받는 일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날 민주당 의총에선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규탄하고 정부에 대화를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서가 채택됐다. A4용지 2장 분량의 성명서 초안은 작은 글씨로 1장의 종이에 인쇄돼 배포됐다. 비교적 큰 글 자체로 된 문서는 그나마 돋보기를 대고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문서는 검토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의원회관 417호에 위치한 최 의원의 사무실에는 커다란 점자 출력기가 있다. 시가 5천만원에 이르는 고가의 장비지만, 최 의원이 사비로 대여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사용 빈도는 높지 않다. 문서를 점자로 변환하려면 별도의 편집 작업을 거쳐야 한다. 도표와 이미지는 아예 반영할 수 없다. 최의원은 “의정 활동에서 가장 불편한 점이 바로 순간순간 제출되는 수많은 자료를 읽지 못하는 점”이라며 이렇게 설명한다. “점자라는 매체는 읽는 데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린다. 실질적으로 점자를 읽으면서 의정 활동을 하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내용을 머릿속에 담아둘 수밖에 없다. 상임위나 행사에서 발언을 하더라도, 기본적인 수치나 발언의 순서 정도만을 적어갈 뿐 내용을 거의 100% 숙지해야 한다.”

17대 국회에서 장애인 국회의원이 처음 탄생하면서 시설 면에서도 개선이 이뤄졌다. 도로나 복도의 턱이 사라지고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인프라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충분한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최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은 벽이 유리로 돼 있고, 문이 갈색이다. 내 상식으론 반대였다. 언젠가 유리벽이 문인 줄 알고 가다가 세게 부딪힌 적이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주변 환경을 보고 적응하는 게 아니라 경험으로 적응해야 한다. 자주 다니는 복도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턱은 어디에 있는지, 문의 위치는 어디인지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차별은 그를 바라보는 비장애인 정치인들의 편견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솔직히 최동익 의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잘한다, 못한다를 평가할 근거가 별로 없다는 말이다. 장애인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왔지만, 당내에서 이를 일종의 구색맞추기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장애인 비례대표는 어쩌면 장애인들의 표를 의식한 선거 전술일 뿐일까.

최 의원은 “차별이나 무시라는 건 차별하는 주체가 변해야 없어진다. 상대방에게 교정을 요구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내면의 변화와 가치체계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회에 들어온 이후 상대방이 나를 인정하기 전에 이렇게 해달라, 이런 자리를 달라고 해본 적이 없다. 대신 상대방의 생각 변화를 모색하는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지역구 출마해 당선되고 싶다”

그는 현재 몸담고 있는 보건복지위를 중심으로 의정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최 의원은 “상임위 간사든 원내 부대표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조직을 이끄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일회성 비례대표’가 아니라 임기를 마칠 때는 정치인으로 변신해서 지역구에 출마해 당

선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것이 장애인의 정치 참여 확대의 전범을 이루는 계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가 배려해주는 것만을 장애인이 기다리는 시대는 끝났다. 권리는 노력과 투쟁을 통해 쟁취된다. 남이 차려준 값비싼 밥상보다 스스로 노력해서 지은 소박한 밥 한 그릇이 더 맛있다는 걸 깨닫는 사회가 되었으면, 그런 세상을 우리 장애인계가 앞장서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시각장애인이자 지체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의 권익을 위해 활동해왔고, 그 활동을 바탕으로 국회의원 자리에까지 오른 최 의원은 장애인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성공 사례’로 꼽힐 만하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일상적인 삶의 공간에서 직간접적인 차별과 소외를 겪고 있었다. 그건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소외의 ‘최소치’일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글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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