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송화… “무대는 내게 차별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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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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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나라 국악경연’ 대상 받은 시각장애 소리꾼 이현아

1일 집 근처인 서울 수성동계곡에서 봄 햇살을 즐기는 이현아 씨. 조만간 고교 2학년인 여동생과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노래할 계획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남성 듀오 ‘디셈버’. 음정이 정확하고 고음에서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란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일 집 근처인 서울 수성동계곡에서 봄 햇살을 즐기는 이현아 씨. 조만간 고교 2학년인 여동생과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노래할 계획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남성 듀오 ‘디셈버’. 음정이 정확하고 고음에서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란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벽을 넘으면 또 벽이 있었다. 스물네 살 가객(歌客) 이현아 씨의 삶이 그랬다. 지난달 25일 국립국악원이 주최하는 ‘온 나라 국악경연대회’에서 대상(대통령상)에 호명된 순간부터 상을 받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까지 울었다. 2년 전만 해도 국악인으로서의 삶은 접어야겠다고 체념했던 그였다. 그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빛도 구별하지 못한다. 임신 7개월 만에 800g 미숙아로 태어나 곧바로 인큐베이터에 옮겨졌다. 갓난아이는 산소 과다 투입으로 망막이 손상됐다. 두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지만 안구가 파열됐다. 그는 이 시대의 ‘송화’(‘서편제’의 여주인공)다. 그의 맑고 고운 소리에는 애잔함이 깃들어있다. 》
    
    
2011년 중앙대 국악대를 졸업하기 직전이었다. 대학 동기들은 하나둘씩 취직을 했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무대에서 노래하고픈 간절한 마음은 잿빛으로 변했다. ‘여기서 소리 인생이 끝나는구나.’ 대학까지 마치고 집에서 놀 수는 없었다. 그는 서울맹학교의 안마사 양성 과정에 지원했다. 합격 통지서가 참담한 마음에 묵직하게 얹혔다.

할머니는 앞 못 보는 어린 손녀에게 트로트를 가르쳤다.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는 아파트 벽을 작은 손으로 두드리며 따라 불렀다.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선생은 아이가 노래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부모는 성악을 가르쳐 보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했다. 아이의 청아한 목소리에는 성악보다 정가(正歌·전통 가곡과 시조를 노래로 부르는 것)가 더 어울린다고 해서 박종순 씨(한국정가원 원장)에게 시조창과 12가사, 여창가곡을 배웠다.

아이는 국어책에 나오는 시조에 음을 더해서 부르는 게 신기했다. 국악을 더 알고 싶었다. 중고교 진학 때 국악학교에 입학하려 했지만 ‘신체적 결격 사유’ 때문에 지원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국악 담당 교사도, 국악반도 없는 서울맹학교에 들어갔다. 소리 공부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국악이라면 뭐든 알고 싶었지만 1주일에 한 번씩 김병오 씨(국립국악원 정악단)에게 받는 레슨 외엔 그 갈증을 채울 길이 보이지 않았다. 서양음악 쪽에는 더러 점역(點譯)한 책이 있지만 국악 분야는 전무했다.

2001년 개국한 국악방송이 그런 그에게 빛이 돼주었다. 깜깜하기만 한 세상에서 소녀는 오후 대여섯 시면 잠들었고 새벽 두세 시에 일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국악에 홀로 귀 기울였다. 국악 해설이 나오면 테이프에 녹음해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들었다.

서울맹학교 고등부 3학년 때, 그는 라디오의 장애인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학을 가고 싶은데 시각장애 때문에 받아주는 곳이 없다. 이러다간 평생 안마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박범훈 중앙대 총장이 마침 이 방송을 들었고 수시모집에 응시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줬다.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경쟁해 7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맹학교만 다녔던 그는 대학에서 처음으로 비장애인들과 어울렸다. ‘보이는 애들’이 “너 오늘 옷 예쁘다” “이 핀은 어디서 샀니”라고 얘기하는 걸 듣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재밌었다. 대화에 낄 순 없었지만…. 두툼한 교재를 한 장씩 일일이 스캔해 텍스트 파일로 만들어 점자로 변환하고, 분량이 너무 많을 때는 엄마와 아빠, 여동생이 녹음해준 것을 들으며 공부했다. 가족들은 4년간 그와 대학을 같이 다닌 것이나 다름없다. ‘봉산탈춤을 보고 감상문을 써라’ 같은 과제는 난감할 뿐이었지만 대학 시절은 여전히 그립다.

그는 스스로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안마사의 길에 들어서려던 그즈음,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이 창단된 것이다. 예술단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오디션에 참가해 보라”고 권했을 때 그는 빛을 보았다. 재능과 실력을 갖춘 여창 가객이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올해 하반기에는 그의 첫 음반이 나올 예정이다. 지난해 정가악회의 ‘가객열전’에서 또래 국악인과 겨뤄 우승한 데 따른 부상이다. 이달 말에는 그가 속한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이 한국-캐나다 수교 50주년 기념 공연을 토론토에서 연다. 그의 꿈은 장애인이 아니라 국악인으로서 용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희망을, 메마른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노래할 수 있을 때까지 무대에 서는 것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이현아#시각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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