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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05-02 (목)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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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방송하는 게 평범한 일 될만큼 사회인식 바뀌어야"

[한겨레가 만난 사람] ‘첫 장애인 앵커’ 출신 방송인 이창훈씨
<한국방송>의 첫 장애인 앵커 이창훈(29)씨가 그의 표현대로 프로그램 이사를 했다. 1년5개월 진행한 한국방송 1채널 낮 시간대 생활뉴스 앵커를 홍서윤(26·지체장애 1급)씨에게 물려줬다. 이씨는 2채널의 장애인 전문 프로그램인 <사랑의 가족> 월요일 방송분에서 한 꼭지를 맡아 진행하게 된다. 22일 첫 전파를 탄다. 앵커에서 인터뷰 전문 리포터로 변신한 것이다. 홍서윤씨가 그의 첫 인터뷰 대상이다.
16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이씨는 앵커직 하차에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2년 정도 했더라면” 하는 바람도 드러냈다. 매일 시청자를 만나는 장애인 앵커라는 자리가 갖는 의미가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다. 점자로 텍스트를 읽어가며 뉴스를 전했던 그에 견주면 하반신이 불편한 후임자의 장애가 화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 점도 아쉽다. 동시에 그는 홍씨의 성공을 간절히 바랐다. 장애인 앵커 제도의 성공으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큰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매일 티브이 화면에 장애인이 비치고, 그게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여겨질 때 장애인을 둘러싼 현실에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이씨는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침묵과 방관에서 깨어나길 희망했다. 장애인 법제의 진전으로 직접차별은 줄었을지 모르지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 또한 큰 목소리를 내는 것과 별개로, 비장애인과 함께 가려는 노력을 적극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 강성만 기획 에디터


-홍 앵커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내 거취가 주목을 받으면서 그에 대한 언론 주목도가 떨어졌다. 앵커 지원 동기, 나에게 묻고 싶은 것 등을 질문했다.”

-후임 앵커 선발과 맞물려 ‘계약직’인 이 앵커의 거취를 두고 장애인 단체 쪽에서 방송사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2011년) 선발 과정에서 프리랜서란 걸 알고 있었다. 다만 한국방송이 시청자들에게 이런 점을 이야기하지 않은 점을 장애인 단체가 꼬집은 것이다.”

KBS 낮 생활뉴스 진행 맡다가 계약 기간 마치고 프리랜서 리포터로 방송 수입으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은 없나?

“20일 이상 일하다 (방송일이 줄어드니) 수입이 반 토막 났다. 수입만으로는 혼자 살아가기 힘들다. 다른 방송일을 찾고 있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언론대학원 진학도 생각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8일부터 한국방송 제3라디오(장애인 대상)에서 ‘이창훈의 행복뉴스’란 주간 단위 프로그램을 새로 맡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 시각장애인 음악인들이 주로 속한 ‘좋은이웃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도 맺었다. 이 회사 직원이 출퇴근길을 동행한다.


-앵커 하차에 아쉬움이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 내가 더 성장할 수 있는 시기이다. 리포터는 제스처도 해야 하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목소리 톤도 바꿔야 한다. 인터뷰 기술도 길러야 한다. 뉴스 말고 다른 분야를 잘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시기다.”

-방송사 정규직에 대한 열망이 있을 텐데.

“(지금은) 일용직이다. 정규직에 대한 기대감, 처음에는 조금 있었다. 어찌 보면 안에 있기보다는 지금이 더 좋을 수 있다. 만들어가기 나름이다. 더 많은 사람과 만나는 접점이 될 수 있다.”

-장애인의 날(20일) 즈음해 이 인터뷰 기사가 나가길 희망했다. 20일에 뭘 할 건가?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잠실야구장을 찾는다. 시각장애인들 가운데 야구팬이 많다. 스탠드에서 통역기를 꽂고 장애인들을 위해 야구 해설을 할 계획이다.”

-앵커 경험으로 뭘 얻었나?

“시각이 성숙해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언론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하게 됐다. 아는 만큼 보이고 모르면 그냥 넘어가게 된다. 공부를 더 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뭐가 가장 어려웠나?

“스포츠나 음악은 알았지만, 정치·사회는 잘 몰랐다. 특히 경제 지표를 읽고 듣는 게 어려웠다. ‘강남스타일’ 뉴스를 많이 했는데 사실 말춤이 어떤지 모른다. 지금도 모른다.”

-티브이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궁금했을 텐데.

“엄마가 미용사다. ‘오늘 머리 눌려 있었구나, 머리카락 잘라야겠다, 살 좀 빼야’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주변 사람들도 많이 해줬다. (화면 모니터를) 아쉽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내가 잘할 수 있는 오디오를 가다듬는 데 애썼다.”

-이 앵커 기용 시기가 한국방송의 수신료 인상을 위한 도청 의혹이 터져나올 때와 겹친다. 이런 이유로 장애인 앵커의 의미가 희석되기도 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이 시각매체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시도다. 이런 시도가 많이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 있었다. 회사 사장들이 이를 두고 장애인들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좋을 것이다. 내가 방송을 통해 장애인 인식을 개선한 것이다.”


후배 장애인에게 자리 물려줘
편견 깨기 위해 꼭 성공 바라
그는 “장애인 앵커가 비장애인에게 단순한 감동의 차원을 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고 장애인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된 연구와 대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다.
이씨는 헌법재판소가 2006년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부여하는 법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렸을 때
“거리에서 무료안마를 시연하고 시각장애인 체험 카페를 열자”고 제안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선 “장애인의 강한 제스처도 필요하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대학 3학년이었던 그는 지인 몇 명과 실제 ‘체험 카페’를 열었고, 시각장애인의 삶을 다룬 창작 뮤지컬 <극야에 피는 해바라기>를 제작해 무대에 올렸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이 시각장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는 않나?

“그렇지 않다. 시각장애인들 요즘 티브이 안 본다. 방송은 화면이 중요해서다. 대신 팟캐스트를 많이 듣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나 강의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신속하지는 않지만 어찌 보면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최적이다. 스마트폰 보이스 기능으로 트위터, 페이스북도 사용한다. 에스엔에스는 접근성이 좋다.”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겠다.

“(서울) 집에서 혼자 사는데, (경남 진주에 거주하는) 어머님이 3~4주에 한 번씩 오신다. 직접 머리카락을 잘라주신다. (앵커 하차에) 어머니 아버지 많이 아쉬워한다. ‘1호 장애인 앵커란 부분이 중요하다’, ‘공부 열심히 하고 관리 잘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해준다.”


‘차별금지’ 법제도는 발전
실질적 삶은 개선될 점 많아


-늘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지금의 이창훈을 만들었다고 했다.

“8살 때 진주를 떠나 서울의 시각장애인 학교를 다녔다. 부모님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슬펐다. 다른 친구들은 다 집에 가는데 혼자 기숙사에 남았다. 난 사투리 쓰고 점자 익히는 속도도 느렸고, 자주 앓았다. 무기력하고 자존감이 낮아졌다. 힘들었다.”

-그 시련이 삶의 자양분이 됐나?

“4학년 때 트럼펫을 배웠다. 사람들이 잘한다고 해주고 나도 좋았다. 무대에서 자주 연주했다. 음악 하면서 자존감이 올라갔다. 중1 때 선배에게서 베이스 기타를 배웠다. 합주 연주가 재밌었다. 친구들이 좋아 중학교 때는 집에 안 갔다.”

-앵커 안 했으면 음악을 했을까?

“음악은 돈과 연계되면 고달플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과 대학원 때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그쪽 일을 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얘기도 했다. “초·중·고 12년을 시각장애인과 함께 공부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렸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있었다. 교회에 다녔는데 비장애인 친구들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대학도 장애인 학생이 적은 곳(부천 서울신학대)을 다녔다. 비장애인 대학 동기들도 장애인을 이해하고 편견을 깨는 시기였을 것이다.”


-장애인으로서 한국 방송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리 언론 방송, 아직은 부족하다. (장애인 가운데) 어떤 시점에서 인기가 있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보이고 노출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시각장애인이 진행하는 뉴스가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 돼야 한다. (내가) 2년만 했어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이상묵 서울대 교수처럼 대단한 인물도 필요하지만 방송이나 일상에서 마주하는 장애인도 있어야 한다.”

-방송사 근무에 어려움은 없었나?

“첫 사회생활이었다. 처음엔 (방송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안녕하세요’만 했다. 제가 이름과 소속을 말해  달라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상대가 누군지 모른다. 한 공간에 같이 있어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된다. 같이 있어 깨닫는 게 많다.”


그에게 방송은 아직은 어려운 곳이다. “언론과 방송 계통 잘 모르겠다. 길이란 게 관계를 통해 열리는 것 같다. 관계형성이 중요하다는 생각 들었다. 그렇다고 (방송 쪽 인사를) 찾아가서 말할 수도 없고, 그게 참 어렵다. 그래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문일지 모르지만 장애가 오히려 인생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본 적 있나?

“시각장애가 있어 앵커가 됐다. 그렇지 않았으면 (고향) 진주에서 살았을 것이다. 겸손한 삶이 아니라 제멋에 살았을 것이다. 여자를 좋아했을 것이다. 진주에서 평범하게, 삶의 의미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흘러가는 대로 살았을 것이다.”

-시각장애인 이해를 위해 권하고 싶은 텍스트나 장소가 있다면?

“신촌에 ‘어둠 속의 대화’란 곳이 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을 1시간30분 체험한다.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통해 그 공간을 경험한다. 그리고 저의 행보를 주시하면 될 것 같다(웃음).”

-한국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살기 좋은 곳이 되고 있는가?

“2008년 장애인 차별 금지법이 시행됐다. 법적인 수단 쪽에서는 발전이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장애인들이 체감하는 것은 없다. 법이 나아가는 것에 비춰 비장애인이나 사회의 수준은 못 미치고 있다. 그래서 같이하는 장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직접 차별했지만 요즘은 무시하고 가거나 침묵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침묵하고 자리를 떠난다. 큰 회사들 2% 채용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런 부분을 떠나 많은 문제에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회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준비한 인터뷰를 마치고 못다 한 말이 있는지 물었다. “홍 앵커, 잘할 수 있도록 시청해주고 관심 가져주었으면 한다. 이분 장애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주목하고 집중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저에게도 관심을 가져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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