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05-02 (목)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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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판소리고수 조경곤씨 "깜깜한 터널서 '소망의 빛'을 보았다."

“당신은 안돼요, 힘들어요, 할 수 없어요….”

그가 젊은 시절 숱하게 들었던 말이다. 시각장애를 안고 있는 그는 무엇을 하려고 하면 사람들로부터 이런 염려를 들었다. 그때마다 그는 생각했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걸까.’ 하지만 20여년이 흐른 지금, 그는 ‘하면 된다’라는 말의 의미를 세상에 보여줬다.

인천시 최초의 시각장애인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명고수 조경곤(46·인천순복음교회) 집사는 지난 18일 기자와 만나 시각장애인의 한계를 이겨내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설명했다.

“두 눈을 잃었을 때 느낌은 정말 공포스러웠지요. 새카만 터널 속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이요. 많이 두려웠습니다.”

그는 운동을 유난히 좋아하던 신체 건강한 학생이었다. 특히 합기도 격투기를 즐겼던 그는 고교 시절 격투기 시합을 하다 망막을 크게 다쳤다. 10여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서서히 시력을 잃었고 결국 20대 후반 완전 실명했다.

“하루가 다르게 눈이 나빠지는데 정말 끔찍했습니다. 점점 보이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눈과 같이 목표도 꿈도 사라졌지요. 하지만 이렇게 인생을 마감하는 건 더 속상했습니다. 희미하게 무엇이라도 볼 수 있을 때 뭔가 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찾은 게 어린 시절의 꿈인 고수였다. 소리판에서 흥을 돋우고 명창의 소리를 빛내는 북 치는 고수. 25세 때 무작정 전북 김제의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와 큰아버지께서 전문 국악인은 아니었지만 판소리를 하셨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시력을 잃기 전 고수가 되고 싶어 국악 선생님을 찾아갔던 적도 있습니다. 그때 박자 개념이 없다고 퇴짜를 맞았거든요. 그럼에도 고수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마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앞을 볼 수 없는 그를 선뜻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고수가 되려면 눈이 좋아야 한다. 명창의 입을 봐야 호흡을 따라갈 수 있다. 명창의 입을 봐야 북의 강약도 조절할 수 있다”며 생각을 접을 것을 권했다.

좌절감에 하염없이 길을 걷다 지하철 역에서 떨어지기를 여러 번. 맨홀에 빠진 적도 있다. ‘차라리 이렇게 죽어버릴까’도 생각했다. 그때 신앙이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우연히 찾아간 새빛맹인교회에서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데 다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밝게 웃었다. 중도 실명한 이들이 신학이나 고시공부를 하고, 안마 기술을 익히는 모습을 보면서 그 역시 다시 살고자 하는 의욕을 불태웠다.

그리고 누군가 읽어준 시편 23편의 말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하나님이 계신데 두려울 게 없었다. 하나님의 능력만 있으면 안 되는 일도 된다는 진리를 그는 깨달았다. 믿음이 살아나자 비로소 소망의 빛이 생겼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고수인 김청만 선생도 만났다. 하루 8시간씩 반복되는 연습에도 그는 힘든 줄 몰랐다.

“명창의 입을 볼 수 없으니 끊임없이 소리를 들으면서 제 손의 감각을 키워갔습니다. 연습은 교회 옥상에서 했고요. 거기가 아니면 북을 들고 산에 올랐습니다. 손에서 피가 나 북에 묻은 것도 모를 정도로 열심히 북을 쳤습니다.”

그 결과 ‘안된다’는 이들의 고정 관념을 깨고 2003년 전국고수대회를 비롯, 서울전국국악경연대회, 순천 팔마고수전국경연대회 등에서 잇따라 입상하며 고수로서 자신의 이름 ‘조경곤’ 석자를 세상에 알렸다. 북의 기량을 보여주는 고법발표회도 세 차례 열었고 오는 10월 네 번째 발표회를 갖는다.

그는 자신의 삶 속에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세상을 볼 수 있었을 때는 박자 개념이 없다고 퇴짜를 맞았지만 오히려 시력을 잃자 그에겐 다른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생겼고 고수로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있는 편견을 깨고 싶습니다. 문화를 통해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이루고 싶은 소망입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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